[박영진의 오량가산책] 배재대 입학사정관 | 전 대전대신고 교장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이내 남매를 낳아서 길렀다. 육아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몫이었고, 곁에서 어머니가 도와주셨다. 나는 남녀가 결혼하여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고, 열 달이 지나서 출산을 한 뒤에는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아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하는 것으로 알았다. 영·유아기에 우리 아이들의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 본 기억이 없는 나는 육아과정이 힘들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마치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 어른들에게서 “너도 장가가서 애 낳고 길러봐라. 그러면 부모 마음을 알게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 말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보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자연스럽게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뜻일 게다. 아내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두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 자신을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어느 정도 깨달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했다가 밤늦게 퇴근하는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휴일에나 잠시 곁에 있었기에 육아과정을 통해서 부모님의 자식사랑을 깊이 체득하지는 못했다.

엄마의 품 안에서 젖을 먹던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걸음마를 떼어놓더니 어느 날부터는 집 안팎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앞가슴에 명찰을 달고 유치원생이 되어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가족들 앞에서 재롱을 떨더니, 입학통지서를 받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집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생활과 학원에 쫓겨 얼굴보기도 힘들게 생활하면서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을 앞두고는 이내 취업이 결정되어 이른 새벽에 출근했다가 늦은 밤에 퇴근하니까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자식은 낳기만 하면 저희들끼리 어울려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사랑스런 딸을 시집보낼 때에는 마치 사위에게 빼앗기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잘 길러주신 딸을 저에게 배필로 주셔서 고맙다는 의미로 결혼식장에서 장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신부의 손을 건네받는 사위의 태도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신혼집에서 소꿉장난하듯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았다.

결혼하고서도 여전히 귀엽고 마냥 어려만 보이던 딸아이가 어느 날 찾아와서는 아기가 들어섰다는 귀띔을 했다. 만혼이어서 은근히 걱정도 했는데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어서 가족들이 모두들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그 후로 길을 가다가 둥그런 배를 내민 채 오리걸음을 걷는 임신부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아마 딸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인가 보다.

이따금 딸아이가 집 대문을 밀치고 들어올 때, 윤기가 사라지고 웃음이 달아난 얼굴을 대할 때면 뱃속의 아기와 함께 사위가 예뻐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에는 시집을 보낸 것이 마치 우리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두 주간이나 고생하다가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출산을 하고 입원실에 누운 모습을 보고서는, 임신과 출산과정이 가혹할 만큼 길고도 힘들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생명을 얻는 기쁨이 천하를 누리는 것보다도 고귀한 일이라고 말했나 보다. 

아내가 해산바라지를 맡으면서 우리들은 딸아이와 외손녀랑 함께 지내게 되었다. 산모는 아기에게 젖을 먹인 뒤에 잠이 들면 요 위에 누인다. 자다가 깨어나 서럽게 울면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무거운 아기를 두 팔로 안고 있다가 잠이 들면 자리에 뉜다. 잠을 자던 아이가 눈을 뜨고 또다시 울기 시작하면 다시 젖을 물리면서 한밤중에도 제대로 잠을 자질 못하고 수유를 한다.

낮 동안도 맘 편히 눈을 붙이지 못한 채 아기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울음소리가 터지면 군대의 5분 대기조보다도 더 빨리 아기에게 달려간다. 아이 엄마는 마치 벌 받는 사람처럼 온종일 아기 수발을 든다. 하루 동안에 기저귀를 20개가 넘게 갈아준다고 하니 산모들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길러 주신 부모님과 두 아이를 기른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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