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99>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프라임사업이 9월 시작되는 내년도 대학 수시모집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교육부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사업에 21개 대학을 선정해 연 2012억 원씩 3년간 6000억여 원을 지원하는데 당장 올해부터 어느 모집단위는 신설 폐지되는가 하면 모집정원도 달라졌다. 이 사업은 산업계 수요에 맞춰 주로 인문·예술계열 학과 정원을 줄여 공대로 이동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학구조조정으로 일단 21개 대학이 올해 신설 증원한 규모만도 5351명이다.

교육부 프라임사업 선정 21개 대학에 3년간 6000억 원 지원

지난 주말 충남대와 유성구청이 마련한 2017학년도 대학 입시박람회에는 대전·충청지역 고등학생 및 학부모 등 6000여명이 참가했다. 몰려든 학생과 학부모들로 인해 일찌감치 입시요강이 동나는가 하면 설명회장 통로까지 종이를 깔고 앉을 정도로 대학들의 변화된 모집요강에 쏠린 눈들이 많았다. 입학사정관이 직접 나와 설명하는 대학별 상담부스의 열기도 뜨거웠다.

이중에서도 프라임대학에 선정된 대학들의 내년도 신입생 선발규모 변화와 학과 개편에 참석자들의 관심이 컸는데 반대로 인문과 예체능계열의 모집정원이 줄어든 데 대한 반발 목소리도 높았다. 프라임사업에 선정된 건국대가 521명, 숙명여대 250명, 이화여대 193명 등 3개 대학의 정원이동 규모만도 1000명에 육박하는데 주로 인문계열을 줄이는 대신 이공계열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대학들은 이미 지난 3~4월 내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발표했는데 프라임사업에 선정되자 이를 수정해 다시 내놓는 바람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컸다. 입시설명회에 온 한 학부모는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해당학과 정원이 프라임사업 때문에 10명이나 줄었다"며 "수시모집을 몇 달 앞두고 모집계획을 바꾸면 어쩌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과 정원을 대폭 줄여 공대로 바꾸는 데 대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부와 대학들이 부랴부랴 만든 게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인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 입시설명회에 온 한 여고생은 "대학에 내는 자기소개서에 내가 그 학교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준비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라고 하는데 여태껏 공무원이 되기 위해 행정학과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어떻게 공대로 교차지원 하느냐"고 울상을 지었다.

학생들을 인솔해 박람회에 온 고등학교 3학년 교사 역시 “일부대학이 문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하고 공대학과 내에서도 인문분야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별도 정원을 배정해 놓았지만 그동안 학생 개개인이 준비해온 것과 달라 어떻게 입시지도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인문계열을 생각하던 학생들에게는 교차지원이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금 받기 위한 인위적 구조조정 부작용 속출

교육부가 거대 자금을 풀며 인문과 예체능을 축소하는 대규모 대학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당장 9월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수시모집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학과를 신설 폐지하거나 정원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대학 자체적으로 구성원들 간 충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인위적 구조조정이 돼 버려 내부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숙명여대, 서강대 등 10개 대학 총학생회 학생들은 프라임사업이 대학을 기업의 하청업체로 만들고 있다며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학내 구성원들이 프라임사업에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 측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구성원들과의 합의 없이 신청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대학의 자율성 훼손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프라임사업에 선정된 대학들이 받는 교육부 지원은 적게는 연간 50억 원, 많게는 150억 원이다. 결국 대학들은 이 돈을 받기 위해 수십 년 유지돼온 학과를 폐지하거나 정원을 줄이는 셈이다. 이화여대에 공대가 생기는 것은 나쁠 게 없지만 학내 구성원들과의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학교 측의 일방적 추진이라면 대학이 정부 지원금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타 대학 예체능학과 줄일 때 더 키운 목원대 경쟁력 높아져

지난주 만난 목원대 박노권 총장은 지원금에 욕심이 나기는 하지만 예체능이 강점인 목원대의 특성을 약화시키고 싶지 않아 프라임사업에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목원대는 프라임사업과는 반대라고 볼 수 있는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에 재공모 했다. 프라임사업 지원금이 연간 최대 150억 원이라면 코어사업은 20억~30억 원에 불과하다.

박 총장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으로서는 정부 지원금을 많이 받고 싶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학이 가진 경쟁력과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 특성을 무시한 채 정부 입맛에 따라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전국 다른 대학들이 예체능학과를 없애거나 정원을 줄이는 바람에 목원대의 인기와 경쟁력은 더 높아졌다는 게 박 총장의 설명이다.

대학이 정부 지원금을 더 따내려고 무리하게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고무줄 늘리고 줄이듯 오락가락한 결과는 장기적으로 학교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진정한 교육개혁이 이뤄지려면 대학 스스로의 자기혁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21개 대학에 3년간 6000억 원을 쏟아 붓는다고 대학이 획기적으로 변하진 않는다. 정부가 쥐어주는 돈에 대학이 길을 잃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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