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깨져야 할 ‘전·현직 시장 불화 전통’

김학용 주필
대전시가 광역시(직할시)로 승격된 지도 30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대전직할시장과 광역시장을 거쳐 간 사람이 6명이다. 이봉학 홍선기 김주봉 염홍철 김보성 박성효 전 시장 등이 1~3번 씩 시장을 지냈다. 지금 권선택 시장까지 합하면 7명이다.

대전에선 볼 수 없는 ‘전·현직 시장들 한 자리 모임’

웬만하면 몇 번은 보았어야 할 장면이 대전에선 없었다. 전·현직 시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대전시민들은 본 적이 없다. 정상은 아니다. 현직 자치단체장이 선배 시도지사들을 초청해서 예우하는 행사는 다른 시도에선 자주 볼 수 있다.

어제 안희정 충남지사는 심대평 전 지사 등 전직 충남지사들을 초청해서 ‘선배님들 말씀’을 들었다. 선배들은 후배 도지사에 대한 격려와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안 지사는 5년 전에도 이런 행사를 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선배 도지사를 모시는 자리를 두 번이나 가졌다. 

어떻게 보면 이런 행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행사다. 시도에서 진행중인 중대 계획이 이런 자리에서 결정되거나 수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은 현직 시도지사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먼저 걸었던 선배에 대한 예우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직 예우, 행정 연속성 안정성 지역사회 연대감에 도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행사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전·현직 시도지사 모임을 통해 전임과 후임, 선배와 후배 시도지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행정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더 나아가 지역 사회의 연대감을 높이고, 이는 지역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현직이 전직을 우습게 여기고, 선배라고 후배에게 불만만 표하는 지역사회가 잘 돌아갈 리 없다. 전·현직 시도지사의 관계는 지역사회 소통의 건강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징표다. 시도지사든 시장 군수든 현직 단체장이 선배들과 임기 중 한 두 번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정상이다.

대전은 그 점에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도시다. 전·현직 시장들이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대전은 전·현직 시장들이 시장선거 때마다 물고 물리는 싸움을 유달리 계속하면서 그렇게 됐을 것이다. 시장선거가 끝난 뒤에도 전현직 간 싸움이 그치지 않으면서 대전광역시는 ‘선배시장’도 ‘후배시장’도 없는 도시가 되었다. 서로 적이고 경쟁자일 뿐이다.

이런 분위기가 대전을 더욱 갈라놓았다. 대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잘 뭉치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전·현직 대전시장들의 지나친 불화’라고 본다. 통합과 소통의 중심이어야 할 시장이 오히려 분열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셈이다. 지역 현안에도 현직이 나서면 전직은 방관하거나 오히려 반대편에 서고, 시장직을 교대하면 입장이 다시 뒤바뀌는 현상도 이어졌다.

‘뭉치지 못하는 도시’ 대전 더 갈라놓는 전·현직 시장들

어떤 지역이든 자리를 놓고 경쟁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분열의 도시가 되고, 전·현직 시도지사가 모여 사진 한번 찍지 못하는 건 아니다. 2010년 충북지사 선거에선 정우택-이시종 후보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현직이었던 정 후보가 패하고 이 후보가 도지사가 되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2011년 정우택 씨를 포함한 충북지사를 초청했고 정 전 지사도 기꺼이 응했다.

한 자리에 모인 충북지사들. 지방선거에서 경쟁을 벌였던 전직 도지사도 초청되고 또 기꺼이 응한다. 광주도 대구에서도 그렇다. 대전은 그게 안 된다.

2014년 광주시장 선거에선 현직이었던 강운태 후보가 안철수 대표가 밀었던 윤장현 후보에게 물을 먹었다. 강 후보는 당내 후보 경선에서 밀리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윤 후보와 끝까지 싸웠으나 패했다. 윤 후보가 시장이 되었다. 작년 말 윤장현 시장은 전직 광주시장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마련했고 물론 강운태 씨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재선의 김범일 대구시장은 2014년 3선 출마를 계획했다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적 이유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를 권영진 현 시장이 차지했으니 그에게 빼앗긴 꼴이다. 그런데도 후임 권 시장은 취임 6월 만에 김 시장을 따로 만나 조언을 들었다고 그 지역언론은 보도했다.

염홍철 박성효 전 시장은 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대전시당 특별위원장이란 이름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현직 대전시장과는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활동이다. 총선 응원 못지않게 대전시장 재선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면서 현직 시장 눈에는 더욱 거슬렸을 것이다.

만일 권 시장이 두 전 시장을 불러 전직 시장 자격으로라도 초청해서 조언과 협조를 구했다면 이들이 노골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서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대전에 함께 살고 있는 전·현직 대전시장이 4년 임기 내내 얼굴 한번 안 보고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사이라면 원수나 다름없다. 

그동안 전·현직 대전시장들은 그런 식의 관계로만 이어져 왔다. 전·현직 시장 모두의 잘못이겠지만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전통’을 깨면 된다. 현직 시장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 권 시장은 전직 대전시장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해봤으면 한다.

전직 예우하면 가장 큰 수혜자는 현직 시장 자신

이런 행사의 가장 큰 수혜자는 권 시장 자신이다. 현직 시장이 전직 시장을 예우하고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들한테도 점수를 따는 일이다. 나아가 지역사회를 통합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만일 ‘2호선 트램’이나 ‘중앙로 차없는 거리 사업’ 등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한 의견을 주고받는다면 대전시 행정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정책 갈등 때문에 전직시장이 나서 현직 시장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토론회를 열고 언론 기고를 통해 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에선 시 행정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 손해인가? 현직이다. 결국은 시민들도 손해일 수밖에 없다.

권 시장이 약속한 경청은 무엇인가? 전직 시장들에겐 유독 귀를 닫고 있다면 그 경청을 누가 믿겠는가? 권 시장은 전직 시장들과의 소통부터 경청을 실천했으면 한다. ‘전·현직 시장들의 불화’를 너무 오랫동안 지켜본, ‘잘 뭉치지 못하는 도시’ 대전시로선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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