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단] 이길구 칼럼니스트 | 문학박사

필자는 26일 논산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황산벌전적지 문화재 지정을 위한 전문가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황산벌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약간의 기대를 하고 참여하였지만 내용이나 모든 면에서 기대이상을 넘어 너무나 뜻 깊은 자리였다. 우선 학술발표내용도 충실했고 여기에다 발표자의 열정, 그리고 일반으로 참석한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필자는 직업상 많은 학술대회를 다니고 있지만 이처럼 열정과 관심, 그리고 기대를 모으게 한 학술대회는 처음인 것 같다.

필자는 어떤 필연인지 몰라도 황산벌과 인연이 너무 깊다. 본적은 황산벌로 알려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316번지요, 자란 곳은 황산성(黃山城)이 바라보이는 연산면 연산리 337번지이며, 지금은 황산성 정상 함지봉(咸芝峰) 북서쪽 자락인 연산면 어은리에 살고 있다. 그런지 몰라도 가끔 언론에 황산벌이나 황산성이 언급되면 눈이 번쩍 뜨이고 온 시선을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황산벌에 대한 이런 나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연구진행이나 새로운 자료가 제시되지 않아 답보상태인 것을 알았을 때는 무척 실망하기도 했다.

특히 가끔 황산벌전투라는 용어가 나오면 이 전투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거시적인 측면보다, 황산벌이라는 위치와 당시 신라군의 이동경로인 탄현(炭峴)이란 지명에만 관심을 가지는 미시적인 측면이 많아 식상(食傷)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는 기존 연구 자료를 충분히 분석한 발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황산벌전적지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물론 논산지역 이미지 제고에 기여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충분한 성과였다. 필자가 여기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발표자의 논점을 간략히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연구자, 황산벌 다양한 자료 제시

이날 세미나에서 강종원 교수(한밭대)는 ‘황산벌전투와 계백’을 발표하였는데 황산벌전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면서, 그동안 일부 문제시됐던 ⑴신라군의 진격로 ⑵진산 숯고개 탄현설 ⑶삼영(三營)의 위치 ⑷오천결사대의 진위 ⑸계백장군소속 동방성(東方城) 여부에 대해 연구결과를 자신 있게 제시했다.

성정용 교수(충북대)는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본 황산벌’이란 주제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황산벌 주변에 어찌나 많은 산성이 있었는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평생 동안 황산벌 주변에 살면서 필자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산성답사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서정석 교수(공주대)는 ‘황산벌 위치에 대한 제논의’이란 주제 발표에서 ⑴연산면 신양리 일대 ⑵연산면 천호리 일대(개태사) ⑶연산면 청동리(매봉부근) 일대 세 곳으로 압축했다. 자신은 개태사와 연관성을 들어 연산면 천호리 일대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인배 연구위원(충남연구원)은 ‘황산벌 전적지에 대한 활용방안’이란 발표를 통해 ⑴황산성 역사문화공원 조성 ⑵탑정호와 연계한 관광코스 조성 ⑶문화콘텐츠 개발 및 관광 상품화 ⑷황산벌 연계 네트워크 관광 개발 ⑸전적지 역사 관광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비롯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호응을 얻었다.

‘황산벌전투’, ‘황산전투’로 제고해야

필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 학술대회를 경청하면서 너무나 많은 황산벌에 관한 지식을 접할 수 있었고, 평소 가지고 있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자 한다.

1. ‘황산벌전투’를 그냥 ‘황산전투’로 명명했으면 한다. 모든 전문가들이 황산벌은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 규정한 만큼 더 이상 황산벌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보다는  앞으로 황산전투른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참고로 연산면 일대를 예전에는 황산이라고 했다.)

2. 황산벌전투에 대한 장기발전계획 등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번의 일과성 연구용역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연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황산벌전투는 우리 5000년 역사의 싸움에서 4대전투 중 하나로 그 중 가장 충의(忠義)적이며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다. 따라서 잘 다듬고 보완하여 스토리텔링과 콘텐츠로 개발하면 그 무엇보다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논산시의 적극적인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3. 황산벌전투 주변의 수많은 산성(山城)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들 산성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했으니 앞으로 시굴, 발굴조사를 통해 가치를 높여야 한다. 또한 이들 산성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복원계획을 세운 다음 산성탐방코스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인근에 계룡대, 자운대, 국방대, 연무대, 항공대가 있으니 장병들의 견학코스로 안성맞춤이다.)

4. 황산벌전투와 계룡산과의 연계성이 필요하다. 황산벌의 황산은 계룡산 남쪽 끝단의 봉우리를 포함한 그 일대의 능선을 지칭한다. 지금의 계룡산은 계룡산 국립공원을 지칭하는 것이며 예전의 계룡산은 신도안을 중심으로 한 연산일대의 황산을 말한다.(<동국여지승람>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황산과 계룡산과의 연관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좀 더 욕심낸다면 계룡산 신도안과 황산벌 주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노력도 해 볼 필요가 있다.)

5. 황산성전투는 1356년 전 일이고 패장의 역사이니 자료가 빈곤함은 당연하다. 역사학자들이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만 자료를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이유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영역을 넓혀 일본이나 중국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역사외적인 자료인 기문(記文)이나 유기(遊記)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혹 통일신라시기 문인들이 황산벌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라도 하나 찾으면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필자는 계룡산을 연구하면서 유기나 기문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계룡산의 과거를 찾을 수 있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이번 행사를 주관하여 황산벌이라는 우리역사의 소중한 가치를 빛내주고 노력에 힘써주신 주제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행사를 주관한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논산시 관계자들에게 지역민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우리 황산벌 지역 주민들은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을 위해 미력하나마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이번 기회에 약속드린다.

*이길구 계룡문화연구소장은 계룡산유기(鷄龍山遊記) 연구로 충남대 한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직 언론인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