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교편 퇴직 후 '헌법 읽기' 운동 벌이는 김용택 씨

지난 24일 오후 7시. 한솔동 첫마을 아이들이 삼삼오오 엄마 손을 잡고 불 꺼진 학교로 향한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미르초등학교 1층에서 열리는 '백발 할아버지'의 철학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지난 2007년 정년퇴임한 김용택(73) 선생님. 선생님이라고는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다.

그는 매주 미르초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난다. 그가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마음 속 ‘부채의식’ 때문이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퇴직 후 다시 강단에 선 내막이 궁금해 24일 오후 직접 만나 들어봤다. 

5년간의 해직생활, 못 다한 ‘학교 밖 이야기’

그는 “오랜 시간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제자들에게 해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운을 뗐다.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세상 이야기를 마음껏 해주지 못해 마음 속 부채의식으로 남았다는 것. 퇴직 후 세종시 아이들을 위해 무료 철학 강의를 시작한 이유다.

강의 교재는 하루 수 천 명의 방문객이 들르는 그의 블로그에 담겨 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온라인 블로그를 꽤 잘 활용한다. 여기에는 교육부터 사회, 정치, 인권, 생활, 종교까지 수 만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단 사회 선생님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배경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69년 경북 칠곡 시골마을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전교조 1세대로 활동하면서 5년간 해직생활을 했다.

그는 “1년간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수배되면서 어느 대학 사회과 교수의 방에 거처한 적이 있다”며 “매일 밤낮으로 책을 읽은 것이 지금의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당시 읽은 책을 통해 온갖 세상사를 알게 됐다는 것.

삶이 곧 철학? “학교가 철학 안 가르쳐”

그가 말하는 철학은 학교에서 배우는 칸트,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관념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등에 대한 자아관과 인생관을 비롯해 행복관, 여성관, 종교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계관 등 삶의 모든 것이 철학”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학교는 제대로 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본의 논리나 이데올로기,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 분별 능력을 기르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다. 평생 혼란 속에서 때론 잘못된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이렇게 정신없는 세상에서 추하게 늙은 어른들을 보면 철학과 판단능력을 기르지 못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손바닥 헌법책 운동, “헌법만 알아도 사회는 성장”

최근 SNS를 통해 떠오른 ‘손바닥 헌법책.’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일종의 작은 핸드북 안에는 살아가면서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헌법전문이 들어 있다. 이 운동을 처음 제안한 사람도 그다.

이 핸드북을 제작해 선보이자 전국 각지의 교사들과 교육계 종사자들의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500원짜리 작은 헌법책은 두 달간 10만 권이 넘게 팔렸다. 여느 책 같으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일이다.

그는 “사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지식인들도 살면서 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며 “헌법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비롯해 민주주의 등 모든 삶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했다. 헌법만 제대로 읽어도 우리 사회는 한 차원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진정한 참교육이란?

병든 교육과 지친 아이들을 바꾸기 위해 살아온 수 십 년.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직 교사와 다를 바 없다. 그에게 진정한 ‘참교육’이란 무엇일까.

그는 “진정한 참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교육의 목적이 ‘개인 출세’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성장하면서 받은 주변의 관심과 사랑은 그 아이의 능력인 듯 여겨지고, 아이들은 사회를 위한 헌신·봉사의 자세 없이 어른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세종시를 보면 정말 제2의 강남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종시가 진보교육감 체제 아래 혁신학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 입시 체제와 학벌의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이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교사들을 향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남이 만들어 준 전공과목의 지식을 외워 전달하는 것이 교육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며 쓴 소리도 전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나'라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다. 그는 강의 첫 시간을 항상 이 구절로 시작한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이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참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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