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96>

대통령 선거를 두어 달 앞둔 2012년 10월 문화방송(MBC) 간부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만나 장학회가 보유한 문화방송 등 언론사 지분매각을 논의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오랫동안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이 장학회는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의 기업가 김지태 씨가 만든 부일장학회가 모태로 5·16 쿠데타 후 군사혁명정부가 강제로 장학회를 빼앗았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 박 후보에게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MBC 간부와 장학회 이사장이 만나 장학회가 보유한 MBC 지분을 매각해 대대적으로 알리는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이들의 대화에서는 "정치적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그림이 괜찮게 보일 필요가 있다”거나 지분을 매각해 대학생 반값등록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장학회 지분을 매각해 사회적 관심이 큰 반값등록금 등에 사용하려는 것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MBC 간부와 정수장학회 이사장 만나 MBC 지분 매각 논의

이들의 은밀한 대화는 휴대폰을 통해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전해졌다. 이 기자는 장학회 이사장과 전화로 취재 중이었는데 이사장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MBC 간부와 이야기를 나눠 기자는 이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한겨레는 통화내용을 바탕으로 '최OO의 비밀회동'을 실명 보도했고 '최OO-MBC 비밀회동 파장, 10월 8일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대화록'이라는 제목으로 상세 보도했다. 장학회 이사장은 이 기자를 즉각 고소했으며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녹음하고 그 내용을 공개한 혐의다.

2012년 대선 전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최종판결이 지난 주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들은 행위는 유죄이지만 이를 녹음하고 보도한 것은 무죄로 봤다. 하지만 2심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녹음·보도한 행위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단대로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를 확정했다. 선고유예는 범행의 정도가 가벼운 경우 선고를 미뤘다가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이 기자가 구속되거나 기자활동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언론자유 위축과 국민 알권리 침해가 걱정된다.

4년 가까운 긴 재판을 마친 이 기자는 "진실을 알리는 기자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이며 감춰진 진실을 국민 앞에 드러낸 게 죄가 된다면 감수하겠다"고 했다. 또 대법원 선고와 상관없이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같은 취재상황이 또 다시 펼쳐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인처럼 기자도 교도소 담장 위 걷는 것과 같아

정치인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에 비유하는 데 기자도 마찬가지다. 오른 팔은 취재현장에 있지만 왼 팔은 교도소 담장 안을 향하기 때문이다. 권력 가까이에서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들이 진실을 밝히는 쪽에 선다면 바른 기자로 남겠지만 권력과 결탁할 경우에는 교도소 안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한겨레 기자처럼 위법성의 기로에서 진실 공개를 선택했을 때는 특종기자라는 기쁨 뒤로 소송의 위험도 따른다. 기자의 소신과 조직의 논리가 항상 같을 수 없으니 때로는 조직의 이익과 충돌하기도 한다. 감춰진 진실을 국민 앞에 드러내는 데는 기자 혼자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할 때가 더 많다.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은 한겨레 내부에서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보도의 필요성이 더 높다고 판단해 진실공개를 선택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기자 자신의 용기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동의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응원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상대 당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하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워싱턴포스트>의 집요한 보도와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같은 용기 있는 기자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다. 언론과 기자가 아니라면 밝혀지지 못 할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경찰 함구…검찰·언론, 진실 찾는 노력 계속돼야

한겨레의 정수장학회 보도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까지 길게 이야기 한 이유는 경찰이 두 달씩이나 수사하고도 대전도시철도공사 채용비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다. 경찰은 진실을 찾아낼 의무가 있으며 언론과 기자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수사결과도 발표하지 않는 경찰은 사건을 덮는 모양새고 언론도 입을 다무는 것 같다.

어제 차준일 전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이 구속됨에 따라 앞으로 수사는 검찰 손에 달렸다. 경찰은 두 달이나 사건을 주물렀지만 2명을 왜 부정채용하려 했는지, 채용을 의뢰하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의 함구가 이어지자 수사를 못 한 것인지, 덮을 수밖에 없었는지 의심만 커지고 있다. 검찰과 언론의 진실을 찾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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