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95>

전국의 4년제 대학 공대(工大) 입학정원이 1, 2년 사이 약 1만 명 늘어난다고 한다. 반대로 현재 고 3이 치를 2017학년도 입시부터 문과 정원은 5000명 가까이 줄어든다. 올해 4년제 대학 입학정원 32만 7992명 가운데 공학계열은 8만 6732명으로 전체의 26.4%다. 이를 내년 입시까지 1만 명 늘리면 전체 입시정원의 29.5%를 차지한다. 고교 졸업자 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대학 신입생의 3분의 1이 공대생이 된다.

교육부가 지난 주 프라임사업(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지원대학 21곳을 발표했는데 향후 3년간 매년 2012억 원씩 지원한다. 선정된 대학들은 내년도 신입생부터 인문사회계열을 감축하는 대신 공학계열을 늘리고 선발되지 못한 대학들도 자율적으로 공학계열을 늘리는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대학들이 알아서 공학중심으로 구조개편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수능 200일 앞두고 인문사회·예체능 정원 줄이는 교육부

수능시험이 200일도 안 남았는데 교육부가 이번 입시부터 인문사회 및 예체능계열 정원을 줄이는 것은 교육현장을 무시한 졸속정책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9월 접수하는 수시모집 요강을 발표했는데 갑작스럽게 문과 정원을 줄인다니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은 물론 교사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서울대총학생회 등 대학생들도 대학을 망치는 교육부의 프라임사업을 중단하라고 아우성이다.

그동안 정부는 입이 닳도록 예측가능한 입시를 치르겠다고 했는데 수능 몇 달 앞두고 문과 정원을 줄이는 것은 약속파기다. 대학들은 궁여지책으로 문·이과 교차지원을 확대해 문과생들의 입시 불이익을 줄이겠다지만 문·이과로 나뉜 교육과정을 밟아온 학생들이 공대로 진학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교육부 프라임사업의 1차 피해자는 특정대학과 학과를 목표로 준비해온 수험생과 학부모다.

예체능계열 학생들의 박탈감은 훨씬 심각하다. 2012년 4만 1695명에서 2015년 3만 9497명으로 이미 5.2%가 줄었는데 앞으로 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정부는 '한류', 'K팝' 등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떠들면서 정작 대학 구조개혁이나 정원조정 때는 예체능계열을 먼저 희생시키니 실망스럽다. 문사철(인문·철학·역사)학과도 대학에서 이미 궤멸의 길을 걷고 있다.

프라임사업은 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이라는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지원을 미끼로 정원조정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대학 구조조정과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구조개혁, 혁신, 선진화 등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대학이 좌지우지됐다. 정부가 교육 주체인 학생보다 기업과 자본의 요구에 따라 뒤흔든 결과 대학은 취업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학평가의 중요기준이 되는 취업률은 학과의 존폐를 결정하는 강력한 무기가 돼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살아남기 힘들다. 당장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초학문을 말살 시킨다면 굳이 대학에 갈 이유가 없다. 취업이 목적이라면 학원에 가서 속성으로 기술 배워 빨리 취직하면 되지 4년간 대학에서 다양한 교양·전공과목을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 국정기조 ‘문화융성’ 헛구호 그쳐

대학 줄 세우기를 통한 인문학 죽이기는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과도 배치된다.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가 만들어져 문화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고 있는데 교육부의 교육정책은 국정 기조를 무색하게 할뿐 아니라 '문화융성'이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끈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모범사례라며 "제조업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을 문화 서비스산업, 문화콘텐츠 중심으로 전환해가면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두 날개를 활짝 펼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여개 나라에 팔린 드라마를 만든 힘도, 배우 송중기를 키운 저력도 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의 공대생 비율은 23%로 OECD 평균의 2배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3배, 미국의 4배 수준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청년실업률은 2011년 7.6%에서 2012년 8.3%, 2013년 8.6%, 2014년 9.9%, 지난해 10.7%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청년실업률은 11.8%로 더 늘었다.

대학들이 지난 10년간 기초학문 분야를 줄여 공대생을 늘린 결과라면 당연히 취업률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인문·자연·예술계열을 줄여 공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지난 정부에서도, 이번 정부에서도 실효성이 없다는 증거다. 기초학문의 탄탄한 뿌리 없이는 스티브 잡스도, 알파고도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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