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브리핑] <16> 짓밟힌 청춘

대전도시철도공사의 ‘합격자 바꿔치기’ 비리 사건의 중심에 경영이사 황재하 씨가 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게 만든 사람입니다. 물론 그는 비리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도시철도공사 사장도 자신의 지시로 발생한 사건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전시는 도시철도공사 사장과 함께 황 씨까지 해임하려고 합니다. 대전시 감사실 관계자는 “(황 씨가) 인사관리 총괄담당으로서 부정채용 과정을 알고 있었다. 채점서류를 사적으로 보관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충건 | 편집국장
내 눈엔 해임 이유가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황 씨가 인사부서 간부인 이상 성적 조작 사실을 몰랐다면 그게 비정상 아닙니까? 대전시의 태도는 ‘알았다 하더라도 입 다물고 있을 것이지 왜 외부에 유출했느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전시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감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 파악보다 비리 유출자 문책을 위한 감사였다고 보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대전시는 황 씨의 유출 사실이 확인되자 그의 비리를 찾는데 힘을 썼다고 합니다. 없는 비리를 찾을 수 없었겠죠.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이유라도 내세워 보복을 하겠다는 거지요.

비리 사실의 외부 유출을 도시철도공사의 내부 갈등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더군요.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번 사안의 본질은 아닙니다. 비리가 있었기 때문에 터진 것이지, 내부 갈등 때문에 점수 조작이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내부 갈등에 초점을 두는 건 물 타기 전략일 뿐입니다. 이번 비리는 채용시험 결과를 조작해서 합격자를 바꿔치기 했다는 사실과, 피해자들이 아직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사회초년생들이란 게 핵심입니다.

도시철도공사 같은 공기업 직원은 신분이 공무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로 채용되어야 마땅합니다. 누군가를 합격시키기 위해 합격권에 있는 다른 수험생의 점수를 깎아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가가 오갔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합격자 바꿔치기 자체만으로 이미 심각한 범죄입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돈도 빽도 없는 ‘흙수저’였습니다.

나는 대전시의 감사 결과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합격자 바꿔치기’가 사실임을 확인했다면 마땅히 합격했어야 할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대책부터 내놓을 줄 알았습니다. 피해자들과 공분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사과하는 게 먼저라고 봤습니다. 근거 없이 비리를 폭로한 황 씨를 쳐내는 일이 그리 급한 일입니까? 비리를 주도한 건 사장인데 말입니다.

대전시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언론과 시민을 속였습니다. 부정합격자가 1명이라니요. 점수를 올려줘서 합격한 사람은 1명이지만 점수를 깎아서 떨어진 사람은 2명입니다. 나머지 합격자 1명은 점수 조작 없이 순위가 올라 합격한 경우입니다.

선거를 치르는데 A가 100표, B가 99표를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락을 바꾸기 위해 B의 득표를 올려주는 대신 A를 2표 깎아 당선시켜놓고 B는 점수조작이 없었던 만큼 B는 부정 당선자가 아니라고 하면 맞는 말입니까? 대전시는 그 말이 맞다고 합니다. 시민들을 바보로 아는 숫자 장난입니다. 불합격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속임수는 쓸 수 없는 일입니다.

요즘 우리 사이트가 선거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에게 당락은 죽고 사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취업 경쟁에서 청년 구직자들에게, 특히 흙수저들에게 도시철도공사 합격은 공직선출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거 개표조작이라면 시민들이 들불같이 일어나 바로잡을 수 있겠지만, 흙수저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준답니까?

지금 대전시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흙수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사건 축소에 급급하고 보복엔 과감합니다. 산하 기관에서 터진 비리에 대전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성을 잃고 있습니다. 참 염치도 없습니다.

부디 권선택 대전시장께서 잘못 수습되고 있는 이번 비리사건을 바로 잡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피해자의 아버지, 형의 마음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