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의 가뿐 숨으로 유럽을 걷다] 스웨덴 스톡홀름

‘서쪽 긴 거리’ 베스테르롱가탄, 분주함과 복잡함의 ‘역설적 미로(美路)’
곳곳 오래된 골동품 가게 몰려 있는 쾨프만가탄, 가장 ‘아름다운’ 골목
시민·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광장,매혹적인 건물들의 ‘집합체’
노벨박물관, 노벨상 역사·역대 수상자 비롯 김대중 전 대통령 기록 전시
스톨홀름, 행복 아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까지 행복 전염시키는 ‘낙원’

골목은 좁다. 하늘을 다 가릴 만큼 높은 중세의 건물들 때문에 골목은 더 좁고 어둡다. 게다가 거친 돌바닥은 얇은 신발 탓에 발이 아프도록 걷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 좁아터진 골목은 늘 행복한 시간이 흔하게 널려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의 골목을 올 때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넓은 광장과는 다른 행복을 읽는다. 작은 가게들을 보면서 희한해 하는 사람들,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있는 작은 간판이 예쁘다고 눈을 못 떼는 사람들, 그러다가 자그마한 동상이라도 발견하면 사진 찍는다고 법석을 떠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행복해 보인다.

감라스탄 대광장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씨줄 날줄로 난 골목들은 높이가 10여m가 넘는 건물들 사이로 비좁게 나 있다. 한눈이라도 팔면 달려드는 나무에 부딪히기도 하고, 벤치에서 쉬고 있는 여행자의 발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감라스탄의 골목들은 아주 어린 시절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며 탐정 놀이를 하던 시절로 기억을 되돌려 놓는다.

골목들은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설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500년의 시간동안 그 골목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다시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감라스탄에서 가장 북적이는 골목은 ‘서쪽 긴 거리’라는 뜻의 베스테르롱가탄(Västergatan)이다. 이름처럼 길고 넓은 골목이다. 길 양 옆 빽빽하게 들어선 기념품 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그 분주함과 복잡함이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다.

베스테르롱가탄과 평행을 이루는 동쪽의 바로 옆 작은 골목은 프레스트가탄(Prästgatan)이라고 불린다. ‘사제의 길’이라는 뜻이다. 19세기까지는 이 길을 통해 루터교 사제들이 대성당이나 독일교회 등으로 다녔다. 그래서 이 골목길은 늘 조용하다. 사제들이 지나갈 때마다 숙연히 손 모아 기도를 했을까? 자극적이지 않은 노란색 벽은 들뜨지 않고 오히려 더 차분하다.

감라스탄 골목의 절정은 모르텐 트로치그 그렌(Mårten Trotzigs Gränd)이다. 모르텐 트로치그는 16세기 독일에서 온 이민자의 이름이다.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사이의 골목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감라스탄 골목길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 골목은 너비가 90cm에 불과하다. 야트막한 경사의 36개 계단에는 무심히 계단을 바라보며 자기 이야기를 채우는 사람들로 늘 가득하다.

쾨프만가탄(Köpmangatan)은 감라스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오래된 상점들이 군데군데 있다. 주로 골동품 가게들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옛 물건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운 좋으면 15세기 이전 바이킹 시대 물건도 구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 쪽에서 대광장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걷다보면 스톡홀름 대성당이 나온다. 감라스탄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1480년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여기서 지난 2010년 6월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가 자신의 스포츠 트레이너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복잡한 감라스탄의 골목을 걷다보면 웅장한 자태로 여행자의 발걸음을 잡는 독일교회도 나온다. 96m 높이의 아찔한 첨탑을 자랑하는 독일교회는 한자동맹 시대 스톡홀름의 경 제 권을 쥐락펴락했던 독일인들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현재도 스톡홀름 부유층 들의 결혼식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

작고 소박한 핀란드 교회 뒤뜰은 편안하고 고즈넉하다. 가지가 많은 나무 그늘과 몇 개의 벤치는 지친 여행자들의 다리를 쉬게 해준다. 거기에는 세심히 둘러보지 않으면 못보고 지날 보물이 있는데, '아이언 보이'다. 교회 뒤뜰의 샘물 약간 뒤쪽에 있는 높이 14cm에 불과한 청동상이다. 이 작은 청동상은 여름엔 맨머리로 있지만 겨울엔 실로 짠 작은 모자가 씌워진다.

어느 겨울 한 여행자가 추워 보인다며 모자를 씌운 이후 일이다.

감라스탄의 모든 골목들이 모이는 곳에 대광장이 있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스톡홀름 시민이나 여행자 모두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싼 한쪽에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광장울 둘러싸고 있는 중세의 건물들은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광장 한 켠에 고풍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런 느낌까지 주는 우물이 하나 있다. ‘해골의 샘’이라 불린다.

1520년 스웨덴을 지배하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스톡홀름의 귀족 90명의 목을 벤 후 모아 묻었는데, 그 위에 ‘해골의 샘’이 만들어졌다. 그 비참한 역사의 현장이 지금은 버스킹의 전당이 돼 있다. 늘 젊은 음악가들의 멋진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광장의 주인공은 노벨박물관이다. 원래 증권거래소 건물인데 2001년 노벨상 100주년을 기념해 노벨박물관으로 개조했다. 안에는 노벨상의 역사와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벨박물관보다 더 의미 있는 공간이 이 건물 3층 스웨덴 아카데미다. 이곳에서 매년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자그마한 의자를 꺼내 들고 나와 골목 사이에서 작게 들이치는 햇볕을 받고 있는 한 노인이 “감라스탄의 골목은 언제나 황금빛”이라고 말한다. 건물 자그마한 유리창에 얼굴을 내민 예쁜 꼬마 아이는 “우리 집은천국에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웨딩 촬영이 한창인 순백의 신부는 “좁은 골목이 포근한 신혼 침대의 이불이 돼 온전히 벗은 몸을 편하게 감싼다”고 했다.

한없이 즐기고 누리되, 도시를 구성하는 그 어느 것하나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도시. 굳이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산다고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 그 어디에도 행복하지 않은 얼굴은 없어 보이는 스웨덴 스톡홀름. 그곳은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게까지도 그 행복을 전염시키는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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