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브리핑] <15> 軍 사망자 10명 중 7명이 자살

그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담배 한 개비를 건넸습니다. 깊이 들이마시더니 날숨과 함께 뽀얀 연기를 뿜어내더군요. 숨소리에는 짧은 탄식이 섞여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신음소리.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은행원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일하면 되는 직장인입니다. 월급 받아 네 식구 건사하는 게 삶의 전부였지요. 쑥쑥 자라는 자식들 바라보는 게 행복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나, 그리고 당신들과 같은.

자식 잃은 아비의 절망, 그리고 분노

그런 그에게 일이 터진 건 작년 8월 24일이었습니다. 아들의 몸뚱이에서 냉기가 전해졌습니다. 손끝에 전해진 그 차가운 기운. 눈이 뒤집혔습니다. 세상이 온통 캄캄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는 절망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6개월, 절망은 분노가 됐습니다.

고(故) 유 일병은 지난해 2월 23일 입대했습니다. 신병교육과 후반기교육을 마친 뒤 종합군수학교 조교로 복무했지요. 자운대 지점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아침저녁 출퇴근할 때마다 부대 앞을 지나다녔습니다. ‘지금쯤 아침 먹고 일과 시작했겠네.’ 그날도 아버지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다쳐 상태가 안 좋다는 소대장의 전화를 받고 국군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건 그날 낮 12시 35분경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은 차가웠습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 듯했습니다. 넋이 나간 그를 의사가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그만 했으면 합니다.” 아들은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링거를 꽂은 채 응급조치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의사는 아버지가 올 때까지 사망선고를 미루고 있었던 셈이죠.

사고 당시 상황은 부대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한 차량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유 일병이 부대 생활관 옥상으로 올라간 건 전날 밤 11시경이었습니다.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건물 아래를 내려 보다가 돌아서기도 하고, 난간에 올라섰다가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50여 분이 흘렀지요. 마음을 굳힌 듯 철제봉을 붙들고 매달렸지만 차마 손을 놓지는 못했습니다. 발을 구르며 몸을 끌어올리려고도 했습니다. 막상 죽음을 결심했지만 마지막까지 그 공포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적성검사 ‘자살 가능성’… 軍, 도움‧배려병사 선정 안 해

도대체 유 일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군 검찰 조사결과에는 선임 병사들이 유 일병에게 수시로 폭언과 욕설을 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 집단따돌림과 언어폭력이란 얘기죠.

군 검찰은 가해병사 4명 중 3명을 군사재판에 넘겼고, 각각 징역 8월~1년을 구형했습니다. 지난 2월 4일 군사법원은 벌금 100만~200만원으로 형량을 낮춰 선고했습니다. 군 검찰은 즉각 항소했습니다. 가해병사 중 한 명은 전역했고 다른 한 명은 4월 전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은 일반 고등법원과 육군본부 고등법원으로 분리돼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가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른 까닭은 가해병사에 대한 처벌의 경중 때문만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아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유 일병은 자대 배치를 받고 한 달 후 군 적성적응도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지에는 유 일병이 ‘개인적 혹은 집단적 괴롭힘을 겪은 적이 있다’고 돼 있었습니다. 심리건강 측면에서 ‘자살 생각이나 욕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돼 있었지요.

다음날 유 일병은 동일한 검사를 다시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전날과 비슷했습니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괴롭힘’을 경험했고 ‘자살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적성적응도 검사 결과를 토대로 유 일병 같은 병사를 도움 및 배려병사로 선정해 유심히 관찰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속 부대는 유 일병을 ‘정상적인 병사’로 취급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청춘의 죽음’

유 일병은 내무반 생활이나 임무수행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선임병사들로부터 폭언을 반복적으로 들어야했던 이유죠. 유 일병 스스로도 이를 괴로워했습니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우울감과 좌절감은 높아졌습니다. 얼마든지 공격적이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는 적성적응도 검사를 통해 확인된 결과입니다.

군의 사병 관리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유 일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겁니다. 유 일병 사건은 군의 적성적응도 검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살 가능성'이 있는 병사라는 진단 결과에도 불구하고 군은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직속 지휘관들이 직무를 다했는지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응당한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나라입니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군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군에서는 자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군 사망자는 1073명이고, 이 가운데 자살자는 767명(71%)에 달합니다. 군 사망자 10명 중 7명은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는 얘깁니다. 부실한 사병관리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군기가 엄히 설리 만무합니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운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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