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주의 문학과 미술사이] 카프카와 자코메티의 실존주의

20세기 공황상태, 부조리 다룬 작품 다수 등장
카프카의 ‘변신’, 충격적인 존재의 무의미성
자코메티 조각,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삶이 덧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무리 애써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도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계속 굴러 떨어지는 헛바퀴를 굴린다는 느낌,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물어질 때, 삶은 바닥없는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고독과 허무로 흔들린다. 인간이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 실존주의라고 불리는 철학과 예술이 등장한다.

세계 대전으로 세상이 공황상태에 빠졌던 20세기, 유독 존재의 허무주의적 성격, 부조리함 등 인간본질을 새롭게 탐색한 작품들이 많은 이유이다. 체코 출신의 유태계 천재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983-1924)는 사르트르, 카뮈와 같은 소설가들이 손꼽는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이다.
대표적인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의 첫머리는 충격에 가깝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평범한 직장인 그레고르 잠자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지만 갑작스럽게 벌레로 변신한 후 그를 진짜 벌레로 대하는 가족들의 매정한 태도 역시 충격을 주기는 매한가지다. 그가 방에 갇혀 있다가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방안을 나와 집의 하숙생들을 놀라게 하자, 가족들은 고함을 지르고 심지어 분노로 식탁 위에 둔 사과를 던져 방으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벌레가 된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곪은 상처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결말 부분이다. 주인공은 죽으면서 가족들과의 애정을 기억하며 죽지만, 가족들은 그가 죽자 가정부에게 그의 시체를 치우게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 소풍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여기엔 단순히 비인간적인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

가족이었던 잠자의 죽음과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도와 행복이라는 양극 사이에 카프카는 인간이 어쩌면 숙명처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부조리함과 무의미성, 존재의 근원 없음 즉 ‘무’(無)를 본다. 그러나 이런 실존에 대한 통찰은 카프카의 역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체코 사회에서 유태인으로서 외로움을 느꼈고 보험사에서 일하다가 결핵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으며, 가족들 중 여동생들을 아우슈비츠에서 잃는 비애를 겪었다. 카프카 소설 속에서 풍기는 소외, 무기력함은 바로 이러한 직접적 체험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노라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조각이 있다. 바로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실낱같이 가느다란 인체 조각이다. 스위스 화폐 100프랑에 자코메티 얼굴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대단하며, 2010년엔 그의 조각 <걷는 사람>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파이프를 가지고 있는 소년>의 경매가격을 갱신한 1202억 원의 가격으로 매겨졌을 만큼 최고가를 달린다.

자코메티 조각의 특징은 한마디로 왜소한 인간, 부러질 듯 길고 가느다란 몸체에 있다. 그의 조각은 주의해 보지 않으면 가끔 사람이 아닌 앙상한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금속 뼈대에 찰흙을 붙인 후 다시 청동의 거친 질감으로 주조한 인물상들은 잊을 수 없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고독과 연약함 그리고 세상 속에 나 홀로 서있는 듯한 그 조각들은 카프카의 <변신>만큼이나 존재의 덧없음을 은유한다.

자코메티 역시 카프카처럼 세계 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시대에 살았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40년대부터 교제함으로써 실존주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때부터 자코메티의 작업은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존재에서 무(無)로” 향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존재가 의식을 제외하면 중량감 없는 가벼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오늘날 여전히 카프카의 <변신>과 자코메티의 가느다란 조각은 인간의 무게 없는 중심, 바로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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