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리학자 이상엽 씨에게 듣는 음력설의 기원

해-달-지구가 일렬로 서는 날, 즉 합삭일(合朔日)이 음력 초하루고, 새해의 첫 초하루가 설날이다. 이날은 낮에도 밤에도 달을 볼 수 없다. 2월 8일의 한 달 전이나 한 달 후에도 합삭이 있다. 그런데 하필 2월 8일이 설날이 됐을까?

역리학자 허정(虛靜) 이상엽(李相燁)씨를 만나 설과 음력의 기원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우리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음력’과 ‘24절기’는 서로 다른 달력이라는 주장을 담은 책 <역법의 역사와 역리학의 바른 이해>를 최근 펴냈다.

역리학자 허정(虛靜) 이상엽(李相燁)씨
음력 설날은 어떻게 정해졌나?

-올해는 양력 2월 8일이 설날이다. 하필 이 날이 설인가? 더 당길 수도 늦출 수도 있었을 덴데.

“설날이란 북두칠성의 꼬리(자루 부분)가 바르게 서 있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음력에 월건(月建)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곧 북두칠성의 꼬리가 그 달에 바르게 선다는 뜻이다.”

*설날 : 정북(正北)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35도 기울어진 방향[해(亥)방향]에서 해-달-지구가 일렬로 서고, 북두칠성의 자루 부분이 북쪽과 동쪽의 가운데 방향[인(寅) 방향]을 가르키는 때가 음력 1월1일이다.

-음력 1월 1일은 언제부터 썼나?

“근거 문헌은 없다. 그러나 4300여 년 전인 요임금 때 음력에 윤달을 넣어 한해를 세(歲)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때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음력 1월1일을 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농사일에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24절기를 기준으로 정했다는 게 옛 선현들 말씀이다. 음력 1월 1일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드는데, 19년에 1번은 우수가 음력 1월 1일이 되며 200년에 2번은 우수가 지난 뒤에 설이 있다.”

천문학적으로는 동지가 새해의 기준

-해가 바뀌는 본래 기준은 설인가 동지인가?

“옛날에는 두 종류의 기준이 있었다. 하나는 법령으로 정한 기준(농사짓는 기준)인 음력 1월이고, 또 하나는 천문학적 기준인 동지(冬至)다. 동지는 24절기력의 정월이다. 정월은 ‘하늘이 바르게[正]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음력 양력 24절기력 3가지가 쓰인다.”

-동지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동지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때로, 한자문화권에선 역원(曆元)이다. 동양 역법을 기준으로 보면 동지가 설날이다.”

-저서에 보니 달력을 만든 최초의 기준이 일(日) 월(月)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7개 행성의 배열과 관련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해와 달이 합삭이 되고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일렬을 이룬 시점을 역원(曆元)으로 삼았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역원이다. 이 4갑자일이 바로 한자문화권의 최초 날짜다.”

-그게 언제였나?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율력지』와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원봉(元封) 7년 즉, BC 104년 갑인년 동지에 7개 행성이 일렬로 배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북두칠성이 인(寅)방향을 가르킬 때가 정월이다.
4300년 전에 ‘365일 달력’ 완성

-『서경(書經)』에 ‘365와 1/4일’이 나온다고 한다. 무슨 의미인가?

“4300년 전 요임금 때 이미 역법이 완성됐다는 의미다. 서경은 천도(天道)를 통해 지도(地道)와 인도(人道)를 모두 설명했다. 서경에 나오는 ‘기삼백(朞三百)’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과 어떤 차이가 있나?

“서경에서는 1년이 365일 6시간이고, 현행 역법에서는 365일 5시간 48분이다. 약간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나 이는 오해다. 서경 역법에는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되 매년 보정해서 사용하라고 했다.”

 -4300년 전에 1년이 365와 1/4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서경 ‘기삼백’에서 ‘희(羲)’와 ‘화(和)’라는 천문관이 나오는데 그 분들이 관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자 문화권의 최초 달력은 역경(易經 주역)이다. 주역의 384효도 음력의 1년 354일과 윤달 30일을 합친 숫자에서 연유한다.”

-고대 천문학은 어떤 학문이었나?

“천문(天文)이 지리(地理)고, 지리가 곧 인사(人事)였다. 하늘 땅 사람을 같다고 본 것이다. 또 천체의 운동이 땅과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하늘의 운동을 중시했다. 천문을 알면 지리를 알고, 천문과 지리를 알면 인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라 때는 새벽 3시 30분에 날짜 바뀌어

-한 해의 시작, 즉 정월이 시대별로 같지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런가?

“하나라 때는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한 해의 시작을 정했고, 은나라(상나라) 때는 소한(小寒)을 기준으로, 주나라 때는 동지를 기준으로 정월을 삼았다. 날짜가 바뀌는 시간도 달랐다. 하나라 때는 인시(새벽 3시30분), 상나라 때는 축시(1시30분)부터 날짜가 바뀌었다. 주나라 때는 지금처럼 밤 12시가 기준이었다.”

 -시대마다 새해의 시작을 달리한 이유가 있나?

“왕조가 바뀌면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달력부터 바꾸었다. 하나라 때는 농사짓기에 편리한 시기를 기준으로 새해의 시작을 정했고, 주나라 때는 역법에 맞췄다는 기록이 있다. 은나라 때의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요즘은 농사짓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굳이 음력을 쓸 필요가 있나?

“하나라 달력은 농사뿐 아니라 생체리듬에도 맞춰진 것이다. 사람은 술시(戌時 오후7~9시)에 잠을 자고 인시(寅時 새벽3시~5시)에 일어나는 게 건강에 가장 좋다. 모든 생물이 마찬가지다. 공자가 안연에게 하나라 달력을 쓰라고 권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설날과 중국 춘절 늘 같지는 않다

-중국 춘절은 우리 설날과 대개 같다. 춘절과 우리 설은 항상 같은 날인가?

“아니다. 다른 경우도 있다. 중국과 우리는 날짜 변경선(자오선)이 다르다. 경도가 10도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 합삭이 들면 초하루가 달라진다. 2028년 우리나라는 양력 1월 27일이 설날이지만 중국은 1월 26일이 설날(춘절)이다. 중국이 하루 빠르다.” (2027년 중국 음력 12월은 작은 달(29일)이고 한국 12월은 큰 달(30일)이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날짜 변경선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우리는 중국 달력을 썼나?

“조선시대 이전에는 중국 달력을 빌려 썼다. 세종 때부터는 달력을 받아와서 우리 시간에 맞춰 다시 만들어 썼다. 그게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다.”

-다시 만들 이유가 있었나?

“합삭 시간과 해 뜨는 시간이 중국(북경)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았다. 30분 차이를 보정해서 썼다.”

이상엽씨가 지난해 말 펴낸 『역법의 역사와 역리학의 바른 이해』 한자문화권 달력의 기원에 대해 『주례』와 『십삼경주소』 등 다양한 고서 원본을 통해 고증하고 있다.
-합삭일이 그렇게 중요한가?

“초하루를 정하는 기준이 합삭이다. 가령 오늘 낮12시에 합삭이 생기면 오늘이 초하루가 된다. 날짜나 시간은 천체 운행의 기준이기 때문에 기준이 달라지면 의미가 없다.”

입춘 우수 등 ‘24절기력’은 한자문화권의 양력

-‘24절기’는 무엇인가?

“입춘 우수 등으로 표현되는 24절기는 한자문화권의 양력이라고 할 수 있다. 편의상 24절기라고 부르지만 기(氣)가 먼저고 절(節)이 나중에 형성되기 때문에 ‘24기절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24기절력’는 왜 필요한가?

“24기절력은 양력보다 더 정확한 달력이다. 동짓날은 항상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그러나 양력으로는 12월 22일 또는 22~23일 동지가 된다. 양력은 1일 정도 오차가 있다.”

*24절기력 : ‘오늘 일진(日辰)이 뭐야?’라고 할 때 그 일진이 바로 24절기력이다. 천문학에선 가장 기준이 되는 달력이다.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즉 칠정(七政)이 일직선으로 배열된 순간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칠정은 1539년마다 일렬로 서지만,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되면서 일렬로 배열되는 되는 날은 그 3배인 4617년마다 한 번 돌아온다.

24절기력의 새해 기준점은 음력 1월1일이 아니라 동지다. 24절기력상 한 달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짧은 경우는 30일 길면 33일이 된다. 10간(干) 12지(支)를 짝지은 60갑자는 24절기력의 날짜 부호이다. 음력에 24절기를 넣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오히려 그 반대다. 24절기에 음력을 맞춘 것이다. ‘24절기력’으로 동지는 늘 일정하지만 음력은 물론 양력에서도 동지날이 해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춘분일과 실제 춘분의 시점이 다르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왜 그런가?

“기상청과 천문연구원의 자료 산정 기준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둘 중 하나는 틀리는 것이 분명하다.”

역사 버리지 않는 한 고천문학 연구 필요

-우주과학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고천문학도 연구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고천문학을 해야 하나?

“옛날에 써오던 천문학을 고천문학(古天文學)이라고 한다. 지금 사용되는 역법은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다. 4300년 전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측정값은 달라질 수 있지만 측정 공식의 기본은 같다.”

-고천문학이 정확하다면 오늘날 우주과학 연구에도 도움이 될까?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지금 천문학은 여러 별을 하나씩 나눠서 측정하는데 그땐 모든 별을 묶어서 동시에 연구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기운(氣運)이 나타나는 현상까지 연구했다.”

-고천문학 연구가 필요한 이유 또 있나?

“고천문학을 하지 않으면 역사(歷史) 연구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버리지 않는 한, 음력과 고천문학을 버릴 수 없다. 생활에 큰 불편은 없지만 음력을 모르면 역사와 단절될 수 있다. 한자를 안 배우고 한글만 배워 족보를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우리나라 고천문학 연구는 어느 수준이라고 보나?

“천문학 고서의 번역이 거의 안 돼 있고, 번역할 인력도 없는 것으로 안다. 현재 고천문학계에서는 60갑자가 24기절력의 날짜의 부호라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다. 24절기의 기번(起番 시작하는 기준)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다. 천문연구원은 입춘을 1번으로 하고 있다. 입춘이 아니라 동지가 맞다.”


이상엽은

-어린 시절 남호천 선생에게 사서(四書) 배움

-명허스님에게 역법(曆法), 주역 계사전, 주역천진 등 수학

-50년간 유학을 연구한 이경섭 선생에게 서전(書傳) 기삼백 등 배움

-대만에서 발행된 ‘역경집성’ 195권과 고천문학인 ‘주비산경’ 등을 통해 역경과 역법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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