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인] <27> '헤어웨어' 패션기업 씨크릿우먼 CEO

'시선권력'의 본질 꿰뚫어 본 통찰력
전통산업 가발에서 헤어웨어 패션 창조
박대통령 미순방 동행, 유태인시장 발견
100% 여성기업, "100년 기업 만들 것"


지난달 29일 김영휴(53) 씨크릿우먼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경력단절 여성(이하 경단녀)에 대한 열변부터 토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흘러 왔다는 것. 여성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에 불과했다. 집안일에 매진하고, 고부간 갈등을 겪으며, 헬리콥터맘으로 살아오는 동안 삶의 에너지를 선순환시키지 못하고 에너지가 굴절되는 삶을 살았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로 살면서 경단녀라는 새로운 계층도 양산했다. 여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자원화하지 못한 경단녀는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의 본질은 남성과 여성, 인간이 공히 평등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정작 남녀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얼마나 공존하며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담론은 없고 지엽적인 문제들만 표면화된다. 김 대표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다. 

김 대표는 “모든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여성성이 필요한 사회가 도래한다고 주장한다”며 “따라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여성 에너지가 굴절되지 않길 바랄뿐”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전통산업이면서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가발산업에서 ‘헤어웨어’를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이끌어냈다. 이 또한 여성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창의적인 아이템이라는 것. 이런 활동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저조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육아로 단절된 채 빼앗긴 엄마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는 이유를 인터뷰 도중 자주 언급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잃어버린 꿈을 펼치겠다고 생각했다. 삶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어 도전한 것이 창업이다.

인간의 욕망서 ‘시선권력’이란 공통분모 발견, ‘뷰티 혁신’ 꽤해

최근 빈모를 부분적으로 가리고 전체적인 패션을 완성하는 ‘헤어웨어(Hair Wear)’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다. 가발을 ‘착용한다’는 표현에서 벗어나 헤어를 ‘입는다’는 새로운 표현을 적용해 헤어웨어 시장은 하나의 패션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헤어웨어 시장의 개척자이자 선두주자. 그는 “가발은 티가 나지 않아야 하나 헤어웨어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처럼 자신을 꾸민 티가 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사양산업인 가발산업에서 헤어웨어라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결합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혁신과 도전정신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만의 집요함과 열정, 근본적으로 사색하고 통찰하는 사고체계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남과 다른 사고체계를 갖고 즐기는 듯 보였다. 그 역시 남과 달리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란 DNA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미 하버드대학 교육심리학 권위자인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쓴 <다중지능>을 예로 들면서 책 속에 나오는 실존지능이 남들보다 강한 것 같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여성 CEO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운 삶인가 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째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반드시 뭔가 일을 하겠다는 꿈도 꿨다. 

김 대표는 “여성은 모성본능과 함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고, 남성은 경쟁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욕망이 있다”며 “특히 인간이 가진 욕망 중 영생이라는 욕망이 가장 크고, 그 다음 부 명예 권력 등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했다.

이어 “아름다움도, 정치 권력도, 부 권력도, 명예 권력도 모두 공통분모는 ‘시선권력’이 있기에 추구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즉 시선을 끌고 싶어 하는 본질적인 욕망이 작용한다”고 했다. 깊은 통찰 속에서 바로 ‘시선권력’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본 것이다.

남다른 통찰력…전통적 제조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헤어웨어’ 재탄생

그는 여기다 뷰티, 헤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에겐 가발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하나의 놀이였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학습은 경험이다. 김 대표는 자신의 통찰력과 경험을 하나의 산업으로 연결 지어 내다봤다.

김 대표는 2001년 씨크릿우먼을 창업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통찰력이 가미된다. 그는 한국이 원래 가발 생산종주국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스위스 시계 산업이 전자시계의 인기로 퇴락했다가 패션산업으로 인해 다시 국가 대표 산업이 된 사례처럼 한국의 가발 산업도 패션산업으로 재도약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헤어웨어는 메이드인 코리아가 최고야’라며 한국에 헤어웨어 제품을 쇼핑하러 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가발과 헤어웨어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봤다. 헤어웨어는 가채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도 가발과 가채는 그 쓰임새가 달랐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발과 헤어웨어의 차이점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가발은 탈모나 빈모를 보강해 주는 기능의 콘셉트 ‘필요시장’이라면 헤어웨어는 복층의 가채와 같은 볼륨핏으로 헤어패션을 위한 ‘욕망의 시장’, 즉 ‘시선권력’의 시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헤어웨어는 두상형 기능의 공간이 웨어러블 디바이스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 바로 헤어웨어 시장에서 미래 패션이 될 가능성을 본 것이다.

김 대표는 사업을 키웠다. 관자놀이 부분을 미적으로 살려주기 위해 ‘부분가발’도 만들었다. 이후 통가발을 제작했다. 정수리의 뽕에서 시작해 머리숱 전체를 보완해주는 통가발 개념의 헤어웨어 산업으로 확장했다.

김 대표의 사업은 어느 날 벼락같이 성공을 거둔 게 아니다. 좋아서 시작했고, 경험과 통찰력을 통해 머리숱을 부분적으로 보완해 주는 헤어웨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여기다 가발이라는 전통적 자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발전시키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고 있었다.

김 대표는 “옷을 ‘입는다’는 표현처럼 전체적인 패션 스타일을 결정하는 헤어웨어도 ‘입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고 봤다”며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헤어도 옷처럼 갈아입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 줄어든 머리숱을 가지고 세련된 패션 스타일을 연출하기 힘들다고 내다본 때문이다. 

백화점에 웬 가발?…대형유통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다  

김 대표는 아이템이 먹혀들자 백화점에 제품을 들고 찾아갔다. 처음에는 백화점 등에서 제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탈모고객만 사용하는 한물 간 보기 흉한 가발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씨크릿우먼 제품은 이리저리 치이고 내몰리기 일쑤였다.

대형유통망에서 잘 팔리려면 눈에 띄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하는 게 현실. 하지만 흉하다는 이유로 구석에 박혀야 하는 역설적인 신세가 됐다. 고객의 발길이 빈번하고 잘 팔리는 명당에는 어김없이 해외 수입 명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제품군이 없는 단독 아이템인 것도 대형유통망의 구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모든 난관을 학습의 기회로 봤다. 행사를 벌였고,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제품들은 대형 유통망을 통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대형유통점에서 유일하게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부유층의 사랑받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의 악전고투 같은 유통수업은 되레 내공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메르스 여파와 유통업계의 한파에도 불구, 15%의 성장세를 보였다.

씨크릿우먼의 헤어웨어는 현재 고급 유통사를 선점하면서 전국 28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패션가발 열풍의 진원지가 씨크릿우먼이 된 것이다.

해외 명품 수도권부터, 국내 제품 지방점부터…불합리한 구조 개선돼야

중소 창업기업은 생존에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내몰린다. 통상 백화점 입점부터 시작하는 해외 명품과 달리 지방점 행사부터 치르고 입점해야 하는 역주행 순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이 불합리한 관행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 대표는 이처럼 불리한 여건에서 살아남는 것이 곧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라고 봤다. 대가 없이 가치 있는 건 없다고 봤다. 김 대표는 “대기업 유통사의 플렛폼 MD들이 중소기업 유통의 길라잡이가 돼 손을 내밀어 준다면 국보급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중기 제품 유통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씨크릿우먼의 제품이 자리잡는데는 지식재산권도 일조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가발 특허를 갖춰 간 건 아니다. 오히려 가발과 관련한 특허가 없다고 해 도전정신만으로 직접 헤어웨어와 관련한 특허를 내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하나씩 해 나간 것이 지금은 특허, 상표의장 등 총 70여건이나 된다. 2013년 발명의 날에는 가발산업의 붐과 함께 지식재산 활성화 공으로 산업 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헤어웨어를 가발이라고 생각했다면 특허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헤어웨어가 하나의 새로운 패션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 버려야…진정성으로 극복

김 대표는 맨땅에 헤딩한 경우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 자본, 인맥, 경영능력 등이 없었다. 주위에선 ‘여성’이라는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며 사업을 만류했다.

그는 초등학생 같은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그렇게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는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하나씩 배우면 된다고 봤다”며 “오히려 모든 걸 다 알고 하면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모르고 하면 사전 준비와 리서치를 철저히 하게 돼 신중하게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둔 창업 초기에는 가사와 육아로 다소 힘들었다. 그는 그러나 “믿음을 갖고 스스로 한 선택과 과정에 대한 책임감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해줬다”고 말한다. 결국 좌절은 외부에서 오는 난관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좌절, 절망, 난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대형유통업계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과의 사투가 더 힘들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진정성을 갖고 노력했다. 그렇게 편견을 이겨나갔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주변에서 인정해 주더라는 것. 씨크릿우먼의 10가지 행동강령 중 첫 번째는 ‘솔직 투명함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관찰 습관, 경청 스킬과 함께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1, 2, 3순위로 놓고 있다.

국가 경제사절단으로 방미…해외시장 진출 계획도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10월 13~16일 미국을 방문할 때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꾸렸다. 당시 이 경제사절단에 김 대표가 포함됐다.

김 대표는 “기업인 입장에선 영광이면서 혜택을 받는 것”이라며 “이를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당시 방미 때 해외 바이어들과의 상담을 통해 유태인들에게 가발 및 헤어웨어 문화가 넓게 형성돼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것도 고급 헤어웨어 시장이다. 그에겐 작지 않은 소득이다. 이 분야 시장이 크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차에 해외시장에서도 먹힐 수 있겠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

다만 해외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꼼꼼히 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먼저 브랜드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데서 나아가 브랜드 스토리와 콘셉트를 함께 수출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헤어웨어 생활화하는 ‘의(衣)문화 창조기업’ 목표

그는 씨크릿우먼이 헤어웨어의 의(衣)생활화, 즉 ‘의문화’를 창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어 헤어웨어로 인간의 꿈이 커지고 꿈터가 되길 바라는 게 두 번째 목표다.

김 대표 혼자 시작한 씨크릿우먼. 15년이 지난 지금은 동반자가 80여명이 됐다. 100% 여성만 근무하는 기업이다.

그는 “강함을 이기는 게 부드러움”이라며 “딱딱한 건 죽음에 가깝고, 부드러운 건 삶에 가깝다. 승부 게임에서 강하고 이기려고만 하는 것과 문제의 상황을 이해하고 거듭나기 위해 끌어안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성은 새로움을 잉태하는 것이고 여성이 가진 모성애는 세상이 가진 모든 걸 거듭나게 하게 한다”며 “여성기업은 세상과 여성들에게 무한한 도전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여성성을 통해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기업의 외형을 키우는 것보다 ‘100년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