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82>

대전시가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사에 이르는 1.1㎞에 차량을 전면 통제하고 걸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은 대단한 발상이었다. 비록 쇠락하는 원도심이라고 해도 이 구간은 대전의 상징이며 차량 통행이 많은 교통의 대동맥이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80여 년 버스, 택시, 승용차 등 자동차 중심 전용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연희 총괄팀장
시가 지난해 중앙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교통체증과 통행 불편이었다. 예상대로 지난해 4차례 운영된 차 없는 거리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중구 주민과 상인들은 교통 불편과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권선택 시장은 오는 3월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물러섰다.

크리스마스 이브 대낮부터 중앙로 차량 통제했으니 난리 당연

참 이상하다. 대전의 대동맥인 중앙로를 막으면 교통체증과 불편이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평소 출퇴근 시간과 주말에도 중앙로 교통은 복잡하다. 그러잖아도 차와 사람이 미어터질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낮부터 중앙로 차량을 통제했으니 난리가 나지 않겠나? 대전시는 이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어떻게 중앙로 차 없는 거리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다.

중구 주민과 상인들의 불만은 교통체증과 통행 불편, 주정차 어려움, 중앙로 외 지역의 매출 감소 등으로 차량을 통제할 경우 충분히 예상되는 것들이다. 코앞에 자기 집을 두고 우회도로에서 발을 동동 구른 중구 주민들의 불편과 중앙로만 북적였지 이면도로 상가는 파리를 날렸다는 상인들의 원성은 대전시의 사전 준비부족 때문이다. 중앙로에 못 들어온 차들로 우회도로는 불법 주정차와 교통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관 주도의 밀어붙이기 행정을 편 대전시는 차 없는 거리에 하루 10만~20만 명이 다녀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보도자료만 냈을 뿐 이해 관계자들의 협조와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이제와 논란이 커지니 행사를 축소하겠다는 것은 무능행정을 인정하는 꼴이다. 월 1회 1.1㎞구간에 차량을 통제하는 데도 시민 공감을 못 얻어 이 야단인데 2~3개 차로를 잡아먹는 트램을 대전 도심에 어떻게 깔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여러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전시가 원도심을 걷기 좋은, 걸을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차 없는 거리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다만 누구를 위해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는지, 누가 어떻게 이 공간을 채울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가 불거지니 당장 축소하거나 중단하겠다는 것은 이 사업이 애초 준비 없이 시작됐다는 반증이며 대전시의 도시재생 의지를 의심케 한다.

대전시가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사에 이르는 1.1㎞에 차량을 전면 통제하고 걸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은 대단한 발상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운영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 모습.
차 빠진 자리에 뭔가 가득 채우겠다는 발상부터 전환해야

어제 대전문화연대가 마련한 집담회에서는 차 없는 거리에 대한 찬반의견과 대안들이 도출되었다. 관 주도로 사업이 추진됨으로써 중앙로에 차를 막는 대신 부스와 무대, 소음이 들어찼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뤘다. 몇 만 명이 다녀갔다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연예인을 불러 시끌벅적은 했지만 시민들이 편안하게 유모차, 자전거, 도보로 중앙로를 느끼고 즐기기는 어려웠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앙로를 문화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장으로 만들었다는 데는 높은 점수를 매겼다.

차가 빠진 자리에 뭔가를 가득 채우겠다는 발상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로뿐만 아니라 은행동, 선화동, 대흥동까지 걷고 즐기며 쇼핑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빼곡한 부스들이 골목 진입을 아예 봉쇄했으니 장사 안 된다는 상인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엑스포 남문광장은 텅 비워놨지만 주말이면 세발자전거를 탄 꼬마부터 인라인 스케이트 마니아들까지 나와 다 같이 즐기는 공간이 된다. 시가 공간을 조성하면 채우는 것은 시민의 몫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실패였다. 대전시는 중앙로에서, 중구는 중교로에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면서 성과 경쟁을 벌이다 서로 생채기만 냈다. 주민들의 불편은 이해하지만 유독 중구가 중앙로 차 없는 거리 설문조사까지 벌이며 크게 반대하는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와 중구, 권 시장과 박용갑 청장이 경쟁관계가 아닌 동반자로서 조율해 중앙로와 중교로에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한다면 협조와 대안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권 시장 취임 후 수많은 경청시스템 만들었지만 실상은 ‘먹통’

대전시는 권 시장 취임 후 명예시장제도를 비롯해 시민행복위원회, 경청간담회, 경청신문고, 직소민원실, 사랑방 경청회 등 수많은 경청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먹통이 아닌가 싶다. 말끝마다 경청, 경청하지만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하나만 봐도 제대로 된 경청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경청과 소통을 통해 차 없는 거리 운영을 결정했다면 불만도 잘 들어 개선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손바닥 뒤집듯 오락가락 행정이 경청과 소통은 아니다.

대전시가 중앙로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중앙로 자체가 대전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중앙로는 차를 가져갈 수 없는 곳, 차를 가져가지 말아야 하는 길, 천천히 걸으며 즐기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나머지 공간들은 문화예술인과 상인, 시민들이 채워갈 것이다. 여기서 대전시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많이 듣고 조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 시장의 경청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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