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인터뷰] 정진석 사무총장 "난 팔씨름 진 적 없는 장사"

  2014 충남지사 선거에 도전하는 정진석 국회사무총장  
 2014 충남지사 선거에 도전하는 정진석 국회사무총장

충남도지사 출마를 결심한 정진석 국회사무총장(54)을 인터뷰했다. 알고 보니 그는 여태껏 팔씨름을 누구한테도 져본 일이 없는 ‘장사’였다. 장사의 힘이 자신감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말은 65%만 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깊이 새겨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 땐 정치를 보고, 국회의원 땐 하고, 사무총장 돼선 지원

-국회 사무총장 해보니까 어떤가?
“사무처는 굉장히 방대한 조직이다. 국회는 상주 인원 5000명에 방문객이 5000 명이다. 15년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정치를 보고, 국회의원 하면서 정치를 하고, 청와대 정무수석하면서 정치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고, 지금은 정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큰 조직을 이끄는 건 처음 아닌가?
“MB때 했던 정무수석실도 방대하니까 큰 행정 경험은 두 번째로 봐야 한다. 나름대로 보람 있었다. 일단 국회의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칭찬해주더라.”

-뭘 칭찬했나?
“작년 봄 국회의장단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절 보시더니 ‘사무총장님, 정규직화 전환 서두르신 거 잘 하신 거 같아요’ 하고 칭찬하셨다.”

-최근 국회의원단체 사진과 제헌국회 조형물이 주목을 받았다. 누구 아이디어인가?
“조형물은 강창희 의장님이 제안한 것이다. 그거 하는 과정에서 과거 국회의원 사진 찾아봤더니 없었다. 여야 이원들이 손잡고 국민들 앞에서 사진 한번 찍으면 상생의 의미도 있지만 헌정사의 귀중한 자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가 많은 편인가?
“직원들의 상상력을 북돋아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취임사에서도 여러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원한다. 문제가 생기면 다 내가 책임진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더라.”

-도지사 도전 결심 언제 했나?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생각 안 했다. 모 현역 의원이 ‘도지사 도전하는 게 어떠냐? 다른 사람들은 현역 의원이어서 부담이 있을 거다’고 해서 관심은 가졌다. 결심은 최근에 했다.”

"내가 지방행정 경험 없다고? 지방행정도 정무수석 업무"

-정무수석은 했으나 지방행정 경험은 없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정무수석이 여의도 정치만 담당하는 게 아니다. 정무수석 업무는 안전행정부와 경찰, 정치권 등 3갈래다. 지방자치단체장과도 수시로 통화한다. 내가 정무수석 할 때 (과학벨트 문제 때문에) 염홍철 시장과는 1주일에 한번 통화했다.”

-당시, 과학벨트는 충청권이 아니라는 게 청와대 분위기였나?
“그랬다. 세종시 수정안이 관철되면 그때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주자는 거였다. 그런데 세종시 수정안이 안 되니까 과학벨트는 다른 데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판을 쳤다. 나는 그건 안 된다. 그러면 (충청권에선) 전쟁 난다. 제2의 세종시 파동이 나고, 이 정부 망하고 정권 재창출도 어렵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정무수석 임명받는 날 누가 과학벨트를 물어서 '충청권으로 가야 된다’고 했더니 조선일보가 배꼽기사로 실었다.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정무수석이 왜 그런 얘기하느냐고 하길래 내가 못할 얘기했느냐, 대통령이 약속한 것 아니냐고 했다. 염홍철 시장이 지금도 만나면 ‘과학벨트는 정 총장이 해줬어’ 하고 말씀하신다.”

"충남도 ‘통일시대’ 대비해야"

-충남지사 되면 하고 싶은 것은?
“충청권은 대 전환기에 놓여 있다. 인구가 호남권을 추월했고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내려왔다. 이럴 때 충청권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가? 정치 행정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 사람들의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역량이 필요하다. 저는 갈등하고 반목하는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지금 충청권에서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자질은 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 총장은 ‘통일 얘기’로 넘어갔다. “통일이라는 현실로 다가올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충남도 통일시대의 그림을 가져야 한다. 제가 말하는 통일은 ‘자유통일’이다. 저는 이념적으로 확실한 보수다. 도지사는 자유통일 시대에 충남을 최대 수혜자로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충남도가 통일에 대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게 무엇인가?
“지금 환황해권 시대나 서해안 시대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확 와 닿는 게 없다.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수밖에 없다. 서해안 지대에 중국 관련 대규모 전략단지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공장과 단지를 만들고, 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서해안에 만들 수 있다. 대 중국 전략단지를 만드는 거다. 이것을 기초로 실질적인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금 뱃길은 너무 멀다. 13시간이나 걸린다. 대중국 고속페리를 띄워야 한다. 대산항이 적지다.”

  국회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영접하는 정진석 사무총장  
국회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영접하는 정진석 사무총장

“말은 65%만 해라” 아버지 말 실천 노력

-집안에 충남도지사 한 분들이 여러 명 있다고 들었다.
“충남도지사와 우리 집안은 인연이 있다. 선친(정석모·2009년 작고)이 충남도지사를 두 번 하셨다. 처조부(이기세)도 두 번 하셨다. 막내 처남의 처조부도 도지사를 하셨다. 도청에 가면 가족들 사진이 많다.”

-아버지한테는 어떤 영향을 받았나?
“아버지는 도지사와 국회의원 6선을 하면서 충청도에서 사랑을 받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인내심이 강했고 많이 베풀었고 말 수가 적었다. 저한테도 하고 싶은 말의 65% 이상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들 100%, 120%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65%만 해도 네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니까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말이 적어서 그런가? 정진석이란 정치인은 ‘색깔’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던데.
“아버지는 6선 국회의원에 도지사도 3번(강원지사 포함) 했지만 자신을 부각시키고 두드러지게 하지는 않았다. 항상 뒤에서 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제가 이번에 출간하는 『사다리 정치』(자서전)도 연결의 의미를 강조하는 책이다. 제 정치는 ‘연결하는 정치’다. 위와 아래, 중앙과 지방, 오른쪽과 왼쪽을 연결한다. 또 소방관의 사다리처럼 누군가를 구제하는 의미도 있다. 저는 그렇게 해왔다고 자부한다.”

“나는 보수(保守)..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색깔이 없지 않다는 강변처럼 들린다.
“정치 이념적으로 저는 보수(保守)다. 보수를 포기할 수 없고, 맞다고 확신하고 있다. 꼴보수는 결코 아니다. 합리적 보수다. 앞으로도 이 정치 철학을 금과옥조로 삼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과도) 거래할 수가 없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정치인은?
“JP(김종필 전 자민련총재)라고 봐야 한다.”

-어떤 점에서?
“(자민련 때) 대변인을 하면서 JP를 밤낮으로 쫓아다녔다. (한국일보) 기자 때도 총리실을 출입하면서 자주 뵈었다. 정치 하라고 권유한 것도 JP다. 아버지보다 먼저 권유했다.”

JP는 정진석의 선친 정석모의 공주고보(현 공주고) 후배이자 동기생이다. 나이는 JP가 3살 위고 입학도 1년 먼저 했으나 공주고보가 5년제에서 3년제로 바뀌면서 졸업동기가 된 셈이다. JP는 정석모가 건강을 잃고 쓰러지자 그의 아들 정진석을 후계자로 생각했다.

“JP가 정치 권유.. 아버지는 처음엔 반대”

하루는 JP가 논설위원실로 가 있는 정진석에게 점심을 하자며 총리실로 불렀다. “아버지 대신 네가 (공주로) 출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무 준비도 없던 정진석은 놀랐으나 아버지한테 JP의 뜻을 전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넌 아직 어리다’며 반대했다. 제가 3남매 중 막내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가족 얘기로 넘어가자 그는 대뜸 억울한 사정을 얘기했다. “저 보고 ‘외아들인 데도 아버지 안 모신 불효자’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당에서 만든 엉터리다. 나는 독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큰 형님한테 계시다가 편하게 돌아가셨다.”

-형제가 어떻게 되나?
“제가 막내고 바로 위가 누나, 그리고 형님이 계신다. 형님은 옛날에는 무역도 했다.”

“3남매인데 ‘불효 독자’라고 공격받았다”

그는 선거 때마다 ‘불효 독자(獨子)’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누구보다 가족들이 황당해한다고 했다. “나를 불효자로 깎아내려야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노인 표를 차단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JP가 도지사 출마도 권유했나?
“금년 1월1일 세배 드리러 갔더니 그런 말씀 하셨다. 얼마 전 정몽준 의원과 셋이 식사할 때도 출마하면 기자회견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운정회(雲庭會) 행사는 누구 아이디어였나?
“내가 운정회 부회장이다. 운정회는 매달 돌아가면서 JP 저녁을 모시는 모임이다. 이한동 총리, 한갑수, 이태섭, 이용만 장관 그리고 나다. 강창희 의장은 의장이 되고 나서 두 번 모셨다.”

“운정회는 JP 위안 드리는 모임일 뿐”

-사적인 모임인가?
“그렇다. (모임을 만들어) JP를 모신 지 3년이 됐다. 운정회는 거기서 확장된 거다. 총재님이 자꾸 건강을 잃어 가시는데 돌아가시면 기념사업도 해야 되고, 역사적 증언을 남기신 것(자료)도 있고 하니 뜻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여보자고 해서. 창립총회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 JP가 최다선 9선의원이니 국회에서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JP 덕을 좀 보려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운정회는 정치적 모임이 아니다. JP에게 위안을 드리는 모임이다. JP는 그날 오셔서 4시간 동안 웃으셨다. 나는 4시간 내내 옆에 붙어 있었다.”

-MB의 정무수석으로 갈 때 친박이었나?
“친박과 친이는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경선 때 어느 쪽을 지지했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나는 그때 국민중심당이었으니 친이도 친박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 중국을 방문중이던 박근혜 의원이 서울(이정현씨)로 전화해서 (박 의원 자신의) 개인논평을 내도록 했다. ‘당과 나라를 위해서 큰 인재를 얻었다. 정진석 의원 입당을 크게 환영한다. -박근혜 의원- 이렇게..’”

  정진석 사무총장의 선친 정석모 전 충남지사(2009년 작고)  
정진석 사무총장의 선친 정석모 전 충남지사(2009년 작고)

선친 정석모 “박근혜 의원에게 잘해라”

‘사전 작업’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펄쩍 뛰며 박근혜 의원이 개인논평까지 낸 이유는 알 수는 없으나 추론은 해볼 수 있다고 했다. “박 의원도 대통령 꿈을 꾸고 있던 정치인 아니었나? 충청권의 힘이 필요한데 충청권에서 제일 젊고 프레시하고 싹수가 있어 보이는 정치인이 정진석 아니었을까? 또 아버지와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도 있다. 아버지는 정치 얘기만 하면 얼굴이 환해졌다. 아버지 일생을 통해서 가장 영향을 받은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봤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박정희 대통령이지!’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30대에 치안총수를 시키고, 40대에 도지사를 3번시키고, 50대에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아 주셨으니 그 이상 영향을 준 분이 없을 거다. 아버지가 ‘너, 박근혜 의원에게 잘해!’ 그러시더라.”

-박정희 대통령이 정석모 지사를 아꼈다는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이 알고 있을까?
“(크게 웃으며)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도지사 하실 때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 그때 셋(박정희 박근혜 정석모)이 찍은 사진도 있다. 나도 정무수석을 할 때 친이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의원을 보호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회동’이 5번 시도됐으나 전부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자신이 정무로 들어가서 비로소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점을 들어 ‘정권 재창출에 가교역할 한 게 정진석이다’고 소개했다.

정진석을 정무수석으로 추천한 임태희

-두 사람 회동이 5번이나 시도됐나?
“나는 실패한 원인을 다 분석했다. 내가 정무수석으로 들어갈 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상의했다. 누구를 정무수석으로 시킬 것인지에 대해..”

-정무수석 추천은 누가 했나?
“2010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임태희 비서실장과 ‘수석 라인업(인사)’을 고민하면서 정무수석으로 누가 좋겠냐고 물었다. 임 실장이 나를 추천했던 모양이다.”


다음은 정진석이 형동생 하고 지낸다는 임태희한테 나중에 들었다는 대화록.

-임태희 : 정진석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명박 : 그래?
-임태희 : 정진석은 충청권 출신에다가 세종시(수정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세종시) 수습용으로도 괜찮고, 친이 친박도 아닙니다. 중립적 위치에서 양쪽 갈등을 수습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고.. 박근혜 대표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명박 : 그래? 그렇다면 (바로) 발표하지 말고 박근혜를 만나서 상의 좀 해봐.

박근혜 “정진석 의원이면 저는 좋지요”

‘밀사’ 임태희는 박근혜를 만난다. 처음부터 ‘정진석 카드’를 꺼내지는 않았다.

-임태희 : 정무수석을 추천해 달라.
-박근혜 : 제가 정무수석을 어떻게 추천해요. 그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임태희 : 정진석 의원은 어떻습니까? (그때 정의원은 3선으로 국회 정보위원장을 하고 있었다.)
-박근혜 : 정진석 의원이 하겠어요. 3선에 (정보)위원장 맡으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의원직도 버리고 가야 하는데 하겠어요?
-임태희 : 그래도 설득해서 시켜야죠. 그만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박근혜 : 정 의원님이 하신다고만 하면 저야 좋지요.

박근혜를 만나고 온 임태희는 정진석에게 연락을 했다. 박근혜를 만났다는 얘기는 안했다. 정진석은 고민하다가 ‘안 간다’고 했다.

-정진석 : 정보위원장 맡은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다 버리고 청와대를 왜 가나?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라. 장관급(정보위원장)에서 차관급(정무수석)으로 강등되는 건데.
-임태희 : 나랑 같이 정권 재창출 해보자. 큰일 한 번 해보자. 남자가 태어나서..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냐? 국회의원은 3번씩 해봤으면 됐지 뭔 미련이 더 있느냐?

임태희의 말을 듣고 정진석은 맘을 바꿨다. 그리고 박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박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며 말했다. “정 의원님은 잘 하실 거예요!” 정진석은 박근혜에게 “가서 잘 하겠습니다” 하고 MB의 청와대로 들어갔다.

  정진석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을 모시고 있다.  
정진석 사무총장(가운데)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

“친이계의 흔들기에도 박근혜 철저히 보호”

그뒤 3개월째부터 친이 쪽에서 흔들어댔다고 한다. “정무수석의 기본 임무가 공정한 대선관리인데 친박 쪽에 유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친이 쪽은) 정무수석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여론조사인데 이것도 못하게 했다. 나는 싸워야 했다. 한나라당의 최대 자원인 박근혜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 수석의 그런 태도에 MB는 어떤 반응이었나?
“당연하다고 보았다.”

-떨떠름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 안했다. 처음으로 박근혜 대표와 상의해서 (나를) 기용했는데 그럴 리 있나? MB는 기업을 하신 분이다. 친이 쪽에서 박 대표를 깎아 내리려고 했으나 대통령만큼은 그렇게 안 했다. 내가 진언 드리는 것을 거의 100% 다 받아주었다.”

"MB는 내 진언 다 받아주었다"

-진언한 게 뭐 있나?
“예를 들어 (총리후보) 김태호 교체나 개헌불가 등 내가 진언드린 대로 했다.”

“박 대표와 수시로 소통하면서 철저하게 박근혜를 보호했다. 박 대표도 그것을 아셨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도 처음으로 탈당하지 않고 떠나셨다. ‘MB-박대표 회동’ 이후 박 대표는 이명박 대표를 한번도 까지 않았다.”

-듣고 보니 공(功)을 보상하는 차원에서라도 충남지사 공천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 된다. 천하의 대통령도이라도. 당헌 당규는 우리 당의 헌법이다. 당헌 당규에 규정된 대로 후보 선출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업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일은 수장(首長)이 아니라 직원들이 한다. 그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리더의 일이다. 나는 두 가지다. 공명정대와 선공후사(先公後私)다. 이것을 ‘화이부동(和而不同·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다)의 철학에 담아 실천하는 사람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서울 중구 출마를 권유할 때 “고향(공주)을 떠나서 어떻게 출마하느냐?”며 어려움을 표했으나 결국은 선공후사의 원칙으로 당의 명령에 따랐다.”

'공명정대'를 '화이부동' 철학에 담아 실천

-중요한 인사 원칙 있나?
“국회엔 노조가 2개 있다. 잘못하면 댓글이 막 올라온다. 1년 2개월 동안 사무총장 하고 있지만 아직 댓글은 하나도 없다. 취임사 때 ‘국회의원 동원해서 인사청탁 사업청탁 하면 불이익 주겠다. 게시판에 올리겠다. 인사 문제 가지고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적재적소 원칙과 인사위원회 열어서 평점을 가지고 인사를 했다. 그 결과 아직 한 명의 불만도 없다.”

-기자와 정치인 다 해봤는데 차이는?
“기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평가하는 데 머물지만 정치인은 실행에 옮긴다. 언론은 정치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비판하는 게 기본자세다. 저는 기자 할 때도 누구와 가깝다는 평은 듣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JP파가 되었지만 특별히 JP를 잘 써준 것은 아니다. 중립적으로, 또 써야 될 것은 다 썼다. 그건 제 자존심이었다.”

그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화하는 것 좋아하지만 잘 나가는 사람들보다는 백수 쪽과 더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자신도 ‘삐딱선’이 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힘이 장사”라며 힘자랑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장사라고 했다. 여태껏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역도선수도 자신을 못 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태껏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역도선수도 자기를 못 당한다고 했다. 장사 같은 힘은 모든 일에 있어 자신감의 원천이 됐고 했다.


고교생 3명 한방에 날려버린 중2 정진석

-몸무게가 몇 kg나 되길래.
“95kg다. 키는 중학교 때도 184cm였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권투 안 해본 것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팔씨름을 져 본적이 없다. 역도선수도 나한테는 안 된다. 보통, 손목뼈는 두 갈래 뼈가 붙어있는데 나는 두 개가 거의 붙어있다.”

‘타고난 장사’는 학창시절부터 힘깨나 썼다. 대전중에서 서울로 전학 가 보성중에 다닐 때다. 인근의 경신고 학생들이 골목에서 중2 정진석에게 ‘삥’을 뜯으려다 그의 주먹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때부터 ‘한방’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이 장사(壯士)였다. 그 힘은 뚝심과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게 스스로의 분석이다. 그는 “육체적으로 힘이 있다는 게 모든 면에서 자신감으로 연결된 것 같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을 때는 한 번도 가담하지 않고 뒤에 서 있었다. 끼어들었으면 큰 일이 났을지도 모른다.”(웃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팔뚝을 내밀며 만져보라고 했다. 굵기가 웬만한 사람의 두 배는 되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 교명 지켜라며 '혈서' 고교 땐 ‘반미 시위’

정치적으로도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다. 서울 성암국민학교 6학년 정진석은 학교가 홍익대 재단에 통합되면서 교명이 없어지자 ‘성암초등학교 교명을 지켜달라’며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성동고 학생회장을 할 때는 카터 미 정부가 우리나라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로 인해 온 국민이 궐기에 나서자 재학생들을 이끌고 신당동 로타리까지 진출하는 ‘고교 반미 시위’를 주도했다고 한다.

-‘인간 정진석’의 단점은 없나?
“남의 말을 잘 믿는다. 사람을 미워하지 못한다.”

-그건 장점 아닌가? 너무 잘 난 사람은 표가 안 나온다.
“성격이 좀 급한 편이다.”

-다혈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덩치가 크고 성량(聲量)이 크다. 화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기자생활 하다 보니 웃는 표정이 아니다. 초선 때는 표정이 너무 굳어 있으니까 양치질하면서 웃는 연습을 하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잘 웃는다. 다혈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피가 뜨거운 어릴 때는 몰라도.”

-다혈질은 ‘성격’이 좀 있다는 말 아닌가?
“피가 뜨겁다. 나는 불의를 보면 그냥 못 넘어간다. 힘이 장사니까 무식하게 보이지만 이게 피에도 원인이 있다. 불끈불끈 한다. 이걸 잘 컨트롤하고 절제해야 된다. 정의감은 아직도 청년이다.”

-좌우명은?
“제 삶을 관통해온 말이 있다. 아까 했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그리고 ‘통섭’이 있다. 두루 두루 잘 조화롭게 한다는 말이다. 나는 적이 별로 없다. 사람 마음에 상처 주는 말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강창희 의장이 비서실장으로 발탁해서 사무총장까지 하고 있는데.
“저는 (출마) 결심을 굳혔다. 빨리 나가서 뛰어야 하는데. 의장님은 사무총장으로 책임을 다 하고 나가라고 한다. 손발이 묶여 있는 상태인데 걱정이다. 의장님 말씀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씀이니까 꼼짝 못하고 있다.”

-강 의장은 개헌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 같던데.
“원론적인 말씀이다.”

-그 이상은 아닌가?
“그 이상 나가지는 않으실 거다. 개헌논의는 언제든지 활성화될 수 있다. 다만 추진 동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노래도 잘한다. 2010년 설날특집 KBS ‘명사노래자랑’에서 MVP를 했다. 김문수 박지원 최불암씨 등 대부분이 흘러간 노래를 부를 때 그는 신곡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 상금 50만원도 탔다.

그는 도지사가 정치인으로 ‘마지막 꿈’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물론이다”며 우선은 아버지처럼 사랑받는 도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말을 절제하면서 주민들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기겠다고 했다. 더 큰 꿈은 그 결과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충청은 이제 영호남의 변방이 아니라며 자신의 ‘통합의 리더십’으로 ‘충청의 중심 시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22일 오후2시 공주 백제체육관에서 자전적 회고록 『사다리 정치』 출판기념회를 갖고, 충남지사 선거 출전을 공식화한다.

[정진석 사무총장은..]

-1960년 생
-성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공주대학교 행정학 명예박사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한국일보 논설위원
-국회의원(3선)
-정보위원회 위원장
-자민련 대변인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최고위원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