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키즈’들의 반란과 경청의 국정

아버지를 대상으로 지식을 쌓아 올렸던 ‘전혜린’

치기와 열정이 적당히 버무려졌던 20대 이후 거의 잊고 있었던 그녀의 이름이 최근에 갑자기 떠올랐다. ‘전혜린’. 60-70년대, 독일 유학, 파격적인 행동, 문학적 감수성으로 수많은 소녀들의 감성을 흔들었던 이다.

전체적인 발언이나 글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몰아가는 ‘난독증’ 이 횡행하는 지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을 언급해도 되나? 하는 자문을 할 만큼 사실 매우 찜찜하다. 평범한 사람들조차 내부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이미 정상성을 벗어나 퇴행하고 있다는 징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불꽃처럼 살다가간 ‘천재’였다.

누군가는 그녀를 두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라고 하기도 했다. 경성제국대학 재학 중 일본의 고등 문관시험에 합격했던 그녀의 아버지도 천재로 통했다. 전봉덕.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전혜린을 다시 떠올린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친일 부역자여서도, 그녀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때문도 아니었다. 나도 한 때 탐닉했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이 대목 때문이다.
“아버지를 대상으로 마치 제단 앞에 향불을 쌓듯 지식을 쌓아 올렸다”

내부검열을 하게 만드는 사회, 정상성 벗어나는 징후

부친의 뜻에 따라 애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중도에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꿀 만큼 당차고 세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도 넘지 못할 하나의 벽이었다.

“일반적으로 장녀가 그렇듯이 나도 매우 부모에 의지하고 있고 부모를 무서워하면서 밀착하고 있었다”고 책에서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아주 각별했다. 숭배하면서도 두려워했다. 한 정신과 의사도 정신분석 관련 책에서 전혜린을 예로 들었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장녀 콤플렉스’”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기틀을 잡았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박근혜 키즈’들마저 연일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준석, 손수조. 일 년 전 박근혜 대통령 후보 곁에서 신선함을 안겨 주었던 젊은 피들이다.

이들의 쓴소리 이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도의 정치공학적인 측면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지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언은 야당 정치인들의 어느 발언보다 더 용감하고 정곡을 찌른다.

수위 높은 발언들이 같은(?) 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우려를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지자들까지 통치스타일에 우려를 표하는 합리적 의심

특히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발탁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12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최근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과 장하나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고 강력한 일사분란한 대응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새누리당이 앞장서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것이 어쩌면 과거의 잘못했던 구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8·28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해서는 정작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155명의 의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는 것을 보면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서의 발언수위는 더 높다. "지도자의 심기만 살피는 면이 ‘북한만의 이야기인지는 미지수’"라며 대통령을 둘러싼 경쟁적 과잉충성을 비판했다. 새누리당이 여당으로 역할을 하기보다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는 ‘종박(從朴)’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통렬한 지적인 것이다. 칼날은 겉으로는 새누리당을 향하고 있으나 결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전체주의’ ‘북한만의 이야기인지...’ 등등. 아마 아슬아슬 수위 높은 이 같은 발언들을 다른 이들이 했으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금쯤 “어디 감히 북한 비교 운운 하느냐”며 대뜸 호환, 마마보다 백배 천배는 더 무서운 ‘종북몰이’에 나섰을 것이다.

‘포용의 리더십’으로 어두운 유산 청산하는 승자의 여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 당하며 묶여 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전혀 다른 지향을 갖고 국정을 운영한다 해도 그렇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긴급조치로 대변되는, 일상적 삶마저 옥좼던 유신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 시대까지 드리우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나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전혜린의 문장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정녕 아버지를 넘어설 수 없는 일인가.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버지가 갖지 못했던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한 “군주는 신민들에게 사랑(amore)을 받는 것 보다 두려움(timore)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는 통치철학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궁극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갈등과 불안의 정치를 끝내는 것은 야당이 아니고 승자인 박근혜 대통령 몫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더 빛내기 위해서도 그렇다. 마키아벨리가 ‘두려움의 리더십’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군주는 ‘증오(odio)’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반대편 주장이 듣기 거북하다면 적어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아끼는 젊은이들의 외침만이라도 경청해야 한다. 최근 <국정은 소통이다>라는 책을 낸 고건 전 총리는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한번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불신의 높은 벽을 막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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